구약강의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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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2 19:2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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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01강 "그대자신을 아이라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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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 한성국목사




평화공동체 성경공부 제4과정
 
예레미야

הימרי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jeremiah01.jpg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635pixel사진 찍은 날짜: 2019년 09월 05일 오후 3:15
 
 
2019년 9월 
 
♣ 글쓴이 : 한성국 hansk39@naver.com
 

<평화교회> 






목 차
 
 
○ 서론
 
제1강 그대 자신을 아이라 말하지 말라 (1장) / 8
(23:7-8=16:14-16; 23:33-40; 36-38장)
 
제2강 내 백성을 ‘살피는 자’로 살라. (6:27-30) / 23
(7:16-8:3; 44장; 14:1-15:4; 24장; 25장; 18:1-12 / 호6:1-6)
 
제3강 이곳을 여호와의 집이 되게 하라 (7:1-15) / 47
(26장; 21:11-22:17; 10:1-16; 17:19-27 / 시15편; 신25:17-19; 행7:46-53)
 
제4강 하나님의 아픔, 예언자의 아픔 (45장) [상징행위] / 63
(10:19-25; 12:7-10; 8:18-9:1; 17:12-18; 26:20-24; 16:1-13; 9:17-22)

제5강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라(23:9-32) / 83
(25-29장 / 왕상22장; 암7:10-17)
 
제6강 희망의 토기를 남긴 사람(32장) / 97
(30-33장; 39:1-40:6; 39-44장; / 마가14:-9)
 
제7강 다른 길은 없다 (20:7-13) / 111
(9:2-11; 20:14-18; 18:18-23; 17:5-11; 34장-35장
/ 로마4:18-22 ; 창15:7-21; 롬7:23-25; 시73편)
 
제8강 그대 말과 경주할 사람이여(12:1-6) / 134
(11:18-23; 13:1-11; 15:10-21)
 
 
♠ 예레미야 서론
 
1. 간단한 설명
렘1:1-3(그의 활동기간) 왕하21-25장; 대하33-36장(역사서기록)
예레미야는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다섯 임금이 차례로 유다를 다스릴 때, 하나님의 예언자로 유다 백성을 상대했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던 앗수르의 세력이 무너지고, 새 강대국 바벨론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예레미야는 처음에는 그 강대국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북쪽에서 오는 적'이라고 했다(1:13-15). 주전597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여호야긴 왕과 일부 상류층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1차포로) 이로부터 10년 뒤 587년 예루살렘은 멸망당하고 많은 유대인들이 사로잡혀 갔다.(2차포로) 그 후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애굽으로 끌려가 최후를 맞는다.
(582년경 바벨론이 임명한 총독 그달리야를 암살하자(왕하25:25) 그 일로 바빌론으로 잡혀간 사건을 3차포로라 부른다)
 
2. 사회정치적 배경 :
2.1. 요시아 통치(주전 640) 전까지의 유다, 이스라엘과 세계상황
1) 솔로몬의 범죄와 죽음(922) 후 이스라엘은 남 유다(예루살렘)과 북 이스라엘(사마리아)로 나뉘고 8세기 중엽까지 각각 독립된 왕국을 유지한다. 열강의 침략 앞에서 동맹과 평화협정 등으로 가까스로 독립을 유지했다. 당시는 대제국이 없는 힘의 공백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특히 9세기 초반에는 이스라엘과 유다는 솔로몬 이후 최고번영을 누렸다(여로보암2세 시대). 하지만 8세기 중엽 커다란 변화가 왔다. 제국을 건설한 앗수르는 두 나라를 수차례 침략하여 조공을 받아갔고, 티글랏블레셋 3세(727-745)가 등극하면서 정복사업을 펼친다. 이 때 앗수르에 대항하는 팔레스틴 주변국들이 동맹을 형성하는데(아람, 르말리야, 이스라엘 등), 동맹가입을 거절하는 유다를 침공한다(사7:1-3). 734년 동맹군은 아하스를 실각시키고 그들이 뽑은 인물을 그 왕위에 앉히려했다. 그러자 아하스는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는 이사야의 경고를 무시하고(사7:4-12), 앗수르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앗수르는 그들 동맹국들을 완전히 진압하고 이스라엘도 멸망시킨다(722년). 반면 유다는 완전파멸은 모면하지만, 앗수르의 통치권을 인정하고 막대한 조공을 바치는 굴욕적 상황아래 놓인다. 그 이후 앗수르왕 살만아세르5세(727-22)에 의해 제국의 힘은 더욱 강화되는데, 이로 인해 유다는 자주권을 상실했으니, 심지어 앗수르의 우상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들여오도록 승인한다. 이사야는 이 정책이 야훼 신앙을 떠난 것으로 비판했다
 
2)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715-687)는 부친의 정책을 뒤집고 앗수르 전역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와 애굽의 원조를 힘입어 독립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것은 이사야의 경고처럼 재난을 초래했다. 앗수르왕 산헤립(705-681)은 즉위하자 이들 동맹군을 공격하고 유다를 침공하여 도시들을 진압했다. 예루살렘 성읍을 포위하여 항복을 강요하고 과중한 조공을 요구했다. 그 결과 예루살렘은 파멸을 면하고 히스기야는 왕위를 유지했지만 독립을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특히 그는 유다의 독립과 전면적 종교개혁운동을 펼친다.
 
2)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687-642)는 스스로 앗수르의 충신임을 선포하고 전 통치기간 그 상태를 유지했다. 이 때 앗수르는 애굽까기 정복하여(663) 그야말로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런 상황에서 므낫세의 유다는 그는 철저히 조부 아하스를 따라 앗수르의 신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데려오고 지방 성소들에 온갖 이교적인 것으로 채웠다. 종교적 매춘행위가 성전에서조차 허용되고(왕하23:4-7), 이런 풍토와 습관이 온 나라에 가득했으니(습1:8), 이 일은 모두 므낫세 왕 자신이 주도했다.(왕하21:6) 히스기야의 모든 개혁시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야훼신앙과 이교신앙을 뒤섞어, 야훼신앙을 다신교 신앙으로 대치했고, 민간에서 다신교 신앙이 급증하였다. 하늘의 모든 천체(天體)들을 신격화시키고, 야훼를 그들 중 주신(主神)으로 모셨으며, 이에 저항한 예언자들을 죽였다.(왕하29:16). 따라서 열왕기서는 므낫세를 유다 왕 가운데 가장 사악하다고 비판하고, 유다의 멸망원인이 바로 그에게 있다고 비판한다.(왕하21:9-15; 24:3,4). (이렇게 악한데도 그의 왕위가 역대 왕들 가운데 최장수인 55년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왕하21:1) 이런 불의는 그의 아들 아몬(642-640)의 기간 동안에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앗수르는 앗수르바니팔의 죽음(627)을 고비로 퇴락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유다에는 요시아가 등장한다. 이제 예레미야가 등장한다. 그는 이런 일을 보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2.2. 요시아의 통치(640-609)와 앗수르의 쇠퇴
앗수르의 통치는 외부적으로 메데인과 키메르인에게서 위협을 받았고 내부적으로는 피정복민들의 소요와 반란에 시달려야 했다. 외부의 적으로는 메데가 으뜸이었다. 그들은 서부 이란에 정착하면서 앗수르를 괴롭혀오다가 8세기 말엽에는 결정적인 힘을 가한다. 내부의 적으로는 식민지 국가들의 계속되는 독립운동이었는데, 그 결과 속국관계는 형식적으로 유지될 뿐이었다. 특히 652년에 갈대아인들이 일으킨 바벨론 지방의 내부폭동은(646년 진압되었지만) 큰 충격을 주었다. 때 맞춰 일어난 왕위찬탈로 인해 앗수르는 바벨론과 메데의 연합국에 의해 점점 몰락의 길로 접어들었으니, 유다에게도 명목적인 힘을 행사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요시아의 시대 유다는 독립을 되찾게 되었고, 예레미야는 이 해에 예언자로서 활동을 시작한다. 요시아는 초기 12년 동안(621)까지는 앗수르에게 신중한 입장을 취하다가 그 후(대하34:3-7), 보다 강력한 개혁 조치를 취한다. 그것은 이방신을 거부한 것인데, 당시 이방신의 거부는 곧 독립운동의 한 방편이었다. 그 후 계속되는 <대결-침략-독립운동>의 과정으로 통해 앗수르의 지배권은 완전히 유다에서 사라졌으며 이제 요시아는 공개적으로 그의 개혁운동을 실시한다. 하지만 그는 무모하게 애굽전쟁에 나섰다가 느고에서 전사한다.(609). 이런 일련의 역사 속에서 신흥제국 바벨론이 점점 세력을 확장한다. 바벨론은 앗수를 점령하고 그 과정에서 메데와 연합하여 애굽을 무력화시킨다.
 
2.3. 예루살렘의 1차포로(609-598) / 예레미야의 본격적인 활동기간
1) 앗수르의 멸망이 임박하자 이제 그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강대국 메대, 바벨론, 애굽이 모두 몰려들었다. 특히 유다는 바벨론과 애굽의 두 경쟁국의 틈바구니 속에 있었다. 609년 애굽왕 느고2세(610-594)는 앗수르를 정복하기 위해 유프라테스를 행군하였고 그 전쟁 중 중 요시아가 죽는다. 그리고 요시아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왕이 된 후 석 달 만에 애굽으로 포로로 잡혀가고(왕하23:31-5), 애굽은 요시아의 다른 아들인 여호야김을 그의 봉신(封臣)으로 왕위에 앉힌다. 여호야김은 강대국에 공물을 바치고 왕위를 이어갔으며, 과도한 세금징수, 강제노동, 화려한 궁전건축(렘 22:13-19), 이방제의도입(렘7:16-8;11:9-13), 도덕적 타락, 비판자들을 향한 위협과 살해(26:20-23) 등 폭정을 일삼는다. 이제 예레미야의 공개적 비판이 시작된다.
 
2) 이런 가운데, 605년 다시 세계 권력에 변화가 인다. 바벨론 장군 느부갓네살은 애굽을 향해 전면적인 공격을 가한다. 가르미스에서 애굽군대를 격파하여 압도적으로 승리하고(46:2-12), 그해 8월에 바벨론 왕위에 오른다.(605년 9월). 그는 604년 말에 다시 침략전쟁을 벌여 블레셋 평원까지 쳐들어간다.(47:2-7). 이때 당황한 여호아김은 느부갓네살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그의 봉신이 된다.(왕하24:1) 그러나 여호야김의 태도는 위기를 모면하려는 술책이었으니, 기회를 엿보던 중 3년 후(601년) 느부갓네살의 본국 귀환을 틈타 폭동을 일으킨다.(왕하24:1). 느부갓네살은 처음에는 자신이 출정하는 대신 주변국들에게(24:2) 유다 공격을 명령하다가, 598년에 직접 바벨론 군대를 보낸다. 그 달에 여호야김은 죽고 18세 된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른다.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른지 석 달 만에 예루살렘은 함락된다. 여호야긴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1차포로>, 그의 숙부인 시드기야가 봉신으로 왕위에 오른다. 유다는 잠시 숨을 돌린다.
 
2.4. 시드기야의 통치와 유다의 멸망(598-587)
1) 598년의 전쟁은 바벨론 군대가 압도적인 힘을 가졌음을 입증했다. 바벨론에 저항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그러나 이 기간 중(598-587)에도 유다에서는 국가의 파멸을 재촉하듯 바벨론에 대한 반란이 계속 일어났으며, 그 후 10년 만에 종말을 맞는다.
 
2) 598년에 <1차 바벨론포로>로 인해 많은 지도자들이 사라졌으며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은 대부분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바벨론이 세운 시드기야 대신에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의 송환을 갈망했고(렘27-28장), 이 일을 위해 야훼께서 개입하실 것이라 확신한다. 이런 소요에 대해 시드기야는 어떤 역할도 할 수 없었다. 특히 에돔, 모압, 암몬, 두로(렘28:2-4)가 바벨론에 대한 반란을 모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594), 이 때 거짓 예언자들이 나타나 야훼가 바벨론의 속박을 깨부수어 2년 안에(28:2-4) 여호야긴과 다른 추방민들을 데리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올 것이라고 선동했다. 이에 예레미야는 그것이 거짓 예언이며, 백성들이 바벨론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한다.
 
3) 유다지배층은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하나님이 구원해 줄 것이라는 확신 하에 바벨론에 공개적 반란을 일으킨다. 시드기야는 이 문제를 놓고 예레미야와 여러 차례 협의하여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언자의 말이 있었음에도(21:1-7; 37:3-10; 28:14-23), 그 말씀을 확신하지 못한 채 귀족들의 열광적 행동을 방치한다. 그러자 바벨론은 재빨리 군사행동을 개시했다. 바벨론의 공격으로 588년 유다는 이제 예루살렘 성만이 남는다(왕하25:1; 렘52:4). 성의 포위가 계속되고 있을 때, 갑자기 시드기야의 요청에 의해 애굽이 진격해왔고 바벨론은 애굽과의 대결을 위해 예루살렘 봉쇄를 잠시 푼다(렘37:5). 온 성 안에 희망이 치솟았다. 구원의 물결이 전 도시를 휩쓸었다(34:8-11; 37:3-10). 하지만 애굽은 곧 쫓겨나고 예루살렘은 다시 포위된다. 587 끝내 유다는 종말을 고하고(렘52:5-6), 수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간다<2차포로>. 감옥에 갇혔던 예레미야는 석방된다.
 
4) 예루살렘은 초토화되고, 바벨론은 그달리야를 유다 총독으로 임명한다.(렘40-44장). 그러자 남아있던 민족주의자들은 총독을 암살하고 반란을 일으키지만 곧 진압된다. 이 과정에서 바벨론을 두려워한 그들은 예레미야를 끌고 애굽으로 도망간다. 애굽에서도 줄기차게 말씀을 전하던 예레미야... 그 후 예레미야의 행적은 알 수가 없다. 582느부갓네살은 <제3차 추방령(3차포로)>을 내렸는데(렘52:36) 이로부터 유다는 완전히 사라진다.
 
5) 그리고 예레미야의 예언처럼 70년이 지나자 유다는 바벨론포로에서 돌아온다. (이때는 바벨론은 이미 바사(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당했고, 실제로 포로귀환명령은 바사 왕 고레스 때 일어난다, 538년 / 에스라1:1)
= 바벨론포로 70년은 1차포로(597년) 중심으로 계산한 것이지만, (여호야김 4년(605년)부터 고레스의 해방칙령(538년)까지인데) 정확한 연대(숫자)라기보다는 유대인들의 완전수를 염두에 둔 어림잡은 수이다.
 
 
3. 내용 (예레미야는 연대의 순서가 아니라 신학적 주제를 따라 썼다)
 
<1부> 1-25장 / 소명(1장), 예루살렘과 유다의 범죄와 심판선언
 
<2부> 26-45장 / 주제 따른 분류
1) 26-29장 / 거짓예언자들과의 논쟁
2) 30-33장 / 이스라엘과 유다를 향한 구원(회복)의 말씀
3) 34-38장 / 유다의 완악함에 대한 경고 모음
4) 39-44장 / 예루살렘 함락과 애굽으로 도망하는 자들
5) 45장 / 바룩 이야기
 
<3부> 46-51장 /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
 
<4부> 52장(부록) / 예루살렘 함락과 바벨론 포로
 
4. 예언 또는 예언자에 대해
1) 예언자와 선지자는 같은 말이다.
“평화를 예언하는(naba') 선지자(nabiy')는 그 예언자(nabiy')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nabiy')로 인정받게 되리라”(렘28:9)
As for the prophet who prophesies peace, when the word of that prophet comes true, then it will be known that the LORD has truly sent the prophet." NRSV
2) 예언자(豫言者)와 예언자(預言者)로 쓸 수 있는데, 보통 우리는 예언자(豫言者)로 쓴다. 이것은 사전에 따르면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짐작하여 말하는 사람’(국립국어원)이다. 물론 그런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의 예언자가 가진 중심 뜻은 아니다. 우리말 번역어 ‘예언자’(豫言者)는 장래의 일을 미리 말한다는 의미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
3) 예언자는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의미’를 지난 말이다. 다른 종교에서도 예언자가 있었다. “그런즉 사람을 보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nabi')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아오게 하소서”(왕상18:19).
4) 구약의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사람이다. 이 때 장래 일 보다는 현재를 말하며, 장래 일을 말할 때도 언제나 현재와의 관계에서 말한다.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임하실 것이다, 그렇게 오시는 하나님 앞에서 지금 어떻게 살아야할 것인가?>. 그를 위해 ① 죄에 대한 책망 ② 심판선포 ③ 회개촉구 ⑤ 구원의 약속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예언자(豫言者)보다는 예언자(預言者)가 성경의미에 더 가깝지 않을까! 곧 예언자는 ‘말씀을 맡은’ 사람이다.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암3:8)
 
 
○ 참고문헌(주석, 예언서 이해)
1. J.M.Bracke(2000) Jeremiah (2vols)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 W.Brueggemann(1988) A Commentary on Jeremiah, Eerdmans
3. R.P.Carroll(1986), The Book of Jeremiah (OTL), SCM
4. R.E.Clements(1988), Jeremiah (Interpretation), John Knox Press
5. P.E.Craigie(1991), Jeremiah, 2vols. (WBC), Word Books
6. J.Guest(1988), Jeremiah, Lamentations Word Books
7. W.Mckane(1986), Jeremiah (2vols). (ICC), T.& T.Clark
8. J.A.Thompson(1980), The Book of Jeremiah, Eerdmans.
9. 박동현(2006) <예레미야 1,2권> 대한기독교서회
10. M.부버(1977) 「예언자의 신앙」 남정길 대한기독교출판사.
11. W.브루그만(2010) 「예언자적 상상력」 김기철 복있는사람.
12. A.헤셸(2004) 「예언자들」 이현주 삼인
13. W.Brueggemann(2006) Like Fire in the Bones Fortress Press
14. W.Brueggemann(2007) The Theology of the Book of Jeremiah, Cambridge
 
제1강 그대 자신을 아이라 말하지 말라 (1:1-19)
 
1. 본문 훑어보기
1.1.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시다(4-8)
1) 하나님의 부르심을 보라(5). 만약 당신은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그럼 예레미야는 어떻게 대답하는가(6)?
 
2)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7-8절을 보라. 당신은 이 말을 들었을 때 청년(소년) 예레미야의 마음을 살펴보자.
 
1.2.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맡을 사명을 주신다(9-10)
1)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곧, 예레미야가 하나님에게서 맡은 말은 무엇인가? 6가지 동사를 보라.

2) 이와 비슷한 말씀을 보라. 렘18:7-10; 31:28. 이 사명은 어떤 의미일까?
 
[설명] 무너뜨림과 일으켜 세움이다. 무너뜨리는 일을 통해 회복이 가능하다. 무너뜨림이 많은 것은 죄에 대한 책망과 경고가 더 많다는 말이다. 무너뜨림의 결정적인 선포는 바벨론 포로다. <바벨론포로>는 선포의 중요한 장치임.
 
1.3. 살구나무가지 환상 (11-12) -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시며 하나님께서 또 예레미야에게 무엇을 보여주셨는가?

1.4. 끓는 가마 환상 (13-16) -“네가 무엇을 보느냐” 예언자가 다시 본 환상은, 북쪽에 있는 나라(바벨론)가 유다를 심판하기 위해 온다는 것이다.
 
1.5. 네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라(17-19)
1) “허리를 동이고 일어나라”는 무슨 뜻인가?
 
2) 예언자의 삶의 자세다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이 너를 치나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 까닭은?

 
2. 1:4-8 하나님이 너를 예언자로 세우셨다.
2.1. “나는 아이입니다”(6). 예레미야에게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어떤 뜻일까?
 
[설명] '아이'(na'ar)란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청소년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대답하는 예레미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객관적 현실이다. “내가 너를 위하여 네 청년(na`ur) 때의 인애와 네 신혼 때의 사랑을 기억하노니(2:2)”
 
2.2. 이어서 그는 말한다 - “나는 말할 줄을 모릅니다”
 
[설명] 예레미야는 645년 악명 높은 므낫세의 집권 말기에 출생했다. 출생지는 예루살렘 북동쪽으로 3마일 떨어진 아나돗이며, 베냐민 부족 영역이다. 제사장가문으로 보이며(1:1), 제사장 제도와 전통에 익숙했고, 호세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언활동을 시작할 당시(요시아13년,627년) 그는 16-18살의 소년(1:6)이었다.
 
1) 예레미야는 유다의 마지막 4,50년간 활동했다(1:1-3). 북왕국 이스라엘은 이미(722년) 앗수르에게 멸망당했으니, 그것은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그런데도 유다는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 더욱 죄악의 길로 간다. “그 아우 오홀리바가 이것을 보고도 그의 형보다 음욕을 더하며 그의 형의 간음함보다 그 간음이 더 심하므로 그의 형보다 더 부패하여졌다”(겔23:11). “그들은 우둔하고 무지한 자들이다”(렘4:22) 앗수르를 제압한 신흥강국 바벨론은 유다를 노리고 있으며, 하나님은 범죄한 그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 바벨론을 이용하실 계획이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모든 무리가 하나같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다.
 
2) 당시 예언자가 되는 길은 이랬을 것이다. 초기에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처럼, 예언자훈련소(Guild)에서 아버지 예언자의 카리스마를 통해 훈련했다. 그러다가 후기로 오면서 성전과 왕궁에서 훈련 받은 「예언자집단」이 생긴다. 그러면서 그 예언자집단은 대부분 타락하는데, 그들은 왕의 구미에 맞는 예언, 백성이 듣기에 좋은 예언만을 일삼는다. 예언자는 그 시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예언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고, 내 백성들마저 그 일을 좋게 여기니, 나중에는 어떻게 될 것인가!“(5:30-31).
이 같은 물결에 맞서 소수의 예언자들이 등장했는데, 오늘 예레미야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는 아마 예언자학교에서 수련을 받고 자란 젊은 예언자로서, 그들의 집단적 힘, 종교사회정치권력의 위용, 백성들까지 그런 일들을 좋아하는 상황을 보았을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자신과 같은 어린 예언자가 나서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들에 견주면 자신은 ‘말할 줄 모르는 자’(I am not skilled in speaking,REB)다. 그들 예언자들의 수많은 입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
 
2.3. 그렇다면 ‘나는 한갓 아이일 뿐’(I am only a boy",NRSV 6)이라는 예레미야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7-8)
 
[설명] 우리는 예레미야의 마음을 백 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 그대는 생물학적 나이로는 <17살 소년>이지만 결코 아이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예언자의 길을 걷도록 모태에서 짓기 전에 알았고,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기 전에 성별하였고,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우셨던 것이다. 다시 보라. “내가 너를 ... 알았다(knew),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consecrated), 내가 너를 세웠다(appointed,JB)”(1:5). 이것은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철저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러기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역사에 책임감을 가져야하고, 그 앞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용기를, 움츠림이 아니라 분명한 자기 확신을 가져야 한다.
 
2.4. 따라서 “그대 자신을 아이라 말하지 말라”(Do not call yourself a child, NEB). 말씀을 7-8절과 함께 읽어보라.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설명] 곧 예레미야가 그 일을 감당할 능력이 있다는 말씀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부름을 듣는데, 그 때 자주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너무 미약합니다. 적의 세력은 너무 큽니다. 내가 할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나는 아이일 뿐입니다>. 그때 주님은 말씀한다. <그대 자신을 아이라 말하지 말라.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8) 그대를 부르신 하나님의 도움과 능력이 그대와 함께 한다. 그분은 단지 우리를 부르실 뿐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그 일을 끝까지 감당할 힘을 주신다. 그분은 수많은 적을 만나게 하실 뿐 아니라, 능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2.5. 하나님은 미디안의 세력 앞에서 두려움에 떨던 기드온을 부르시며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O valiant warrior.NASB)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삿 6:12)
 
[설명] 기드온은 미디안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밤중에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다.(was threshing wheat inside the wine-press, to keep it hidden from Midian,NJB). 하지만 그는 큰 용사다. 하나님의 일꾼은 언제나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그대의 힘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Go in this might of yours,NKJV)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14). 하나님의 힘이 바로 그대의 힘이다.
 
 
3. 1:9-10 무너트리고 일으켜 세우라
3.1. 여호와께서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에 대시면서 그가 전할 말씀을 주신다. 그 말씀은 무엇인가? 18:7,9; 24:5-6; 31:27-28,38-40; 42:10; 45:4도 보라
 
[설명] “뽑다, 파괴하다, 파멸하다, 넘어뜨리다, 건설하다, 심다”(To root out and to pull down, To destroy and to throw down, To build and to plant,NKJV)라는 이 여섯 동사가 나온다. 이를 둘로 나누면 「뽑다!」와 「심다」다. 곧 예레미야가 받은 말씀(방향)은 둘인데, 하나는 이 땅을 무너뜨리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이 땅을 세우는 일이다.
 
3.2. 그럼 “무너트림”과 “일으켜 세움”은 각각 무엇을 말하는가?
 
[설명] 1) 무너트림 : 그들의 죄를 드러내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다. “내가 북방 왕국들의 모든 족속들(바벨론)을 부를 것인즉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무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들에 절하였은즉 내가 나의 심판을 그들에게 선고하여 그들의 모든 죄악을 징계하리라”(1:15-16) “그러나 너는 말하기를 나는 무죄하니 그의 진노가 참으로 내게서 떠났다 하거니와 보라 네 말이 나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다 하였으므로 내가 너를 심판하리라”(2:35)
2) 일으켜 세움 : 그 심판 후에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임을 말한다. 주님은 그들을 깨끗케 하시어 그 위에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신다. “너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지경으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17)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33:16)
 
♣ 구원을 어떻게 말하는가?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23:7-8=16:14-1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가 이 땅에서 번성하여 많아질 때에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시는 말하지 아니할 것이요 생각하지 아니할 것이요 기억하지 아니할 것이요 찾지 아니할 것이요 다시는 만들지 아니할 것이며”(3:16)
 
[설명] 장차 일어날 구원은 그들의 뿌리인 출애굽을 잊을 정도로 새로운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587년 성전이 파괴될 때에 없어질 언약궤를 더 이상 아쉬워하지 않을 것은 온 예루살렘 이 하나님 계시는 곳(보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상징물이나 매개물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가 된다. “그러나 그 시절이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언약을 세울 것이니, 나는 나의 율법을 그들의 가슴 속에 넣어 주며, 그들의 마음 판에 새겨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31:33)
 
♣ 21:8-10을 보라! “...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라 너는 이 백성에게 전하라 하셨느니라.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의 얼굴을 이 성읍으로 향함은 복을 내리기 위함이 아니요 화를 내리기 위함이라 이 성읍이 바벨론 왕의 손에 넘김이 될 것이요 그는 그것을 불사르리라”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 바벨론을 사용하실 것이다. 바벨론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한다.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다. 예언자는 이 일을 마치 가나안 앞에선 이스라엘을 향한 모세의 연설과 같은 방식으로 말한다.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신30:15,16)
 
3.3 특히 ‘무너트림’을 전하는 일(전하며 사는 일)은 힘겹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탄식한다.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맞서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a man of strife and a man of contention to all the land, NASB)”(15:10).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설명] ‘무너트림’은 예언자의 사명이다. 그 결과 그는 사람들과 싸움꾼처럼 되었다. “예언자들의 가슴에는 한평생, <여기 들어온 자여 아첨하는 말일랑 버릴지어다」(All flattery abandon, ye who enter here)>라는 말이 보이지 않게 새겨져 있다. 예언자가 된다는 것은 외톨이가 되는 고통을 겪는다. 그가 감당해야 할 일은 자신에게는 쓰디쓴 일이고 남에게는 불쾌한 것이다”(헤셸).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태10:34) -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어머니와 딸이 싸울 것이다.. 지금껏 그들은 ‘그리스도 복음 없이’ 평화롭게 지냈다. 하지만 이제 싸우게 된다. 그를 참된 평화가 임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무엇과 싸우는가?
 
36-38장은 무너트리는 말씀과 그 결과.
(1) 36장. 여호야김 시대,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두루마리)은 임금에 의해 화롯불에서 한 줌 재가 된다.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22-23). 하나님에게서 듣고 애써 전한 말씀이 한 줌 재로 사라졌을 때 그가 받았을 고통...
 
(2) 37장.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외치는 예레미야를 바벨론과 내통한 자로 몰아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고관들이 노여워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서기관 요나단의 집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 집을 옥으로 삼았음이더라. 예레미야가 뚜껑 씌운 웅덩이(지하감옥)에 갇힌다”(15-16). 분명 하나님에게서 받은 말씀을 사람들은 듣지 않을 뿐 아니라 대적한다. 시드기야 왕의 호의로 가까스로 왕궁감옥으로 옮겨 매일 떡 한 개씩을 먹으며 지내야 했다(21).
 
(3) 38장. <바벨론에 항복하라.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선포에 대해, 적대자들은 고발한다 : 예레미야는 백성의 평안을 구하지 아니하고 재난을 구하고, 이 성에 남은 군사의 손과 모든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사기를 떨어뜨려)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이기에 죽임을 당할 자다. 그는 다시 감옥에 갇히는데, 그 감옥은 진창이 질퍽한 구덩이인데, 줄로 달아내려 예레미야를 진창 속에 빠트렸다. 이 모두는 <무너트림>을 선포한(살아간) 결과이다.
 
23:33-40 “말씀이 짐인가?”
(1) 사람들은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말씀을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massa)’>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하는 자들에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 여기 여덟 번 나오는(33,34,36,38)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설명] 여기서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으로 옮긴 히브리낱말은 '짐'을 뜻한다. (the burden of the LORD,NRSV) (또는 What is the oracle of the LORD,NKJV /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새번역). 지금 그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엄중한 말씀=짐(부담)되는 말씀>으로 여긴다. 심판예언을 '짐'으로 느꼈기에 그들은 예레미야를 향해 이 말을 자주 쓴 것으로 보인다. 33절은 이런 뜻이다. [그들이 네게 ‘여호와의 짐 되는 말씀이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너는 ‘너희가 여호와의 짐이다’이다. "What is Yahweh's burden?" you must answer, "You are the burden,..NJB. 이제 그 짐을 버릴 것이다‘라고 대답하라]
 
(2) 이것은 (무너뜨리는!)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조롱 섞인 구호다. 우리는 묻는다 “말씀이 짐인가?” “네가 옛적부터 네 멍에를 꺾고 네 결박을 끊으며 말하기를 나는 순종하지 아니하리라 하고 모든 높은 산 위에서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너는 몸을 굽혀 행음하도다”(2:20) “내가 지도자들에게 가서 그들에게 말하리라 그들은 여호와의 길, 자기 하나님의 법을 안다 하였더니 그들도 일제히 멍에를 꺾고 결박을 끊은지라”(5:5)
 
[설명]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짐(부담)이요 멍에요 결박으로 여겼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야훼께 짐이었다(33).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부담이 아니라 자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5: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 가질 태도는 이것이다. 35절, 37절을 보라.
“친구나 친척끼리 서로 말할 때에는 '부담이 되는 주님의 말씀(masssa)'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느냐?'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하고 물어야 한다고 일러주어라.(35) “이제 예언자에게 물을 때에는 '주님께서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느냐?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느냐?' 하고 물어라.”(37)(새번역) This is what you must say to one another, among yourselves, "What answer has Yahweh given?" or "What has Yahweh said?"(35) This is the way to speak to a prophet, "What answer has Yahweh given?" or "What has Yahweh said?"(37)NJB
 
[설명] ‘짐되는 말씀’(massa)이라고 말하지 말고, 진실하게 ‘여호와의 뜻을 묻는’ 자세여야 한다. 서로를 향해 물을 때도, 예언자에게 물을 때도.
 
(4) 그런 그들이기에 예레미야와 같은 진실한 예언자를 싫어하며, ‘부드러운 말을 하라’고 요구한다. 사30:9-10; 암5:10도 보라.
 
[설명] “대저 이는 패역한 백성이요 거짓말 하는 자식들이요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사30:9-10).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암5:10) 무너트림을 선포하는(살아가는) 사람은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종교를 원한다. 그렇지만 부드러운 종교를 원한다. 사람들은 공개적인 불신앙 속에서 오래 살지 못하며 엄격한 고행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살 수가 없다. 편안한(온화한) 종교가 오래 지속되는 데 적합하다. 사람들은 아무 신앙 없이 이런 종교들을 찾았다”(팡세:779항)
 
3.4. 무너트림과 일으켜 세움은 선포(삶)의 두 방향이다. 예언자는 이 두 방향을 따라 평생을 살았다. 오늘 우리도 이 두 말씀을 하나님에게서 받아, 그리고 선포해야(살아야) 한다. 이 둘을 어떻게 선포할(살) 것인가?
 
[설명]
1) 우리는 먼저 심판의 언어를 회복해야 한다. 오늘 예레미야에는 「무너뜨리는 일」(심판언어)가 넷으로 더 많다. 그것은 예나 오늘이나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떠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예언자는 그 일을 수행한다(2강을 보라). 그러나 무너뜨림은 선포자나 청중 모두에게 힘겹다. 선포자는 힘들고 청중은 귀를 열지 않는다. 예언자는 무너트림을 말하는 용기를, 듣는 이들은 열린 귀를 가져야 한다.

2) 심판언어의 궁극적 의의는 회복이다. 곧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24: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27-28)

3) 언제(어디서) 무너트림을 (또는) 일으켜 세움을 선포해야 할지 정해진 규칙은 없다. 그렇다고 적당히 둘을 반씩 섞어 선포하라는 것도 아니다. 언제 무너트림(또는 일으켜 세움)을 선포해야 할지 그것은 그 시대와 씨름하면서 성령의 부르심을 들어야 한다. 아무튼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무너트림이 없이는 일으켜 세울 수 없다! 무너트림은 일으켜 세움을 지향해야 한다!”

4) 무너트림과 일으켜 세움의 최고의 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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