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강의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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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9 16:04:37
관리자
예레미야05강 "토기장이 이야기의 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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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제사장의 눈앞에서 오지병을 깨트림(19:1-9) 유브라데 강에서 썩은 베띠를 가지고 온 일(13:1-11)과 같은 예언자의 상징행위는 그들의 심판상황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5.5. 24:1-10 무화과 두 광주리(좋은 것, 나쁜 것) 환상을 보라. “..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잘 돌볼 것이라”
 
[설명] 주전597년에 예루살렘에 이방군대가 처음 들어온 뒤에 성읍 안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바벨론으로 이미 붙잡혀 간 사람들을 하나님이 멸망시키신 죄인들로 여기고(겔11:1-11 참조) 교만하게 깔보았다. 하지만 사로잡혀 간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다르게 나타난다. 곧 그들은 백성 중에서 가장 좋은 자들이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돌보아 주시려 함이다(5). 지금 이 땅에서 무모하게 바벨론에 대항하는 너희야말로 하나님이 버리실 썩은 무화과다(8). “이 성읍은 너희를 보호하는 가마솥이 되지 않을 것이며, 너도 그 속에서 보호받는 고기가 되지 않을 것이다”(겔11:1,새번역)
 
♣ 예언자는 말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가 내게 가득하여 참기 어렵도다”(6:11a) 오늘 분노가 그리스도인의 성품인 것을 아는가?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he was greatly distressed,NIV)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행17:16-17)

♣ 렘25: 1장-24장에서 행한 선포의 정리한다.
1) 1-14절 / <유다의 범죄-회개촉구-그들의 거부-바벨론포로-회복> ‘다른 신을 따르지 말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23년 동안 선포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보냈지만 너희는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가 바벨론을 섬길 것이다. 그리고 칠십 년이 지나면 돌아오게 하리라.
 
2) 15-38절 / 이웃나라를 향한 예언 (46장-51장은 이 말씀을 확대한 것이다. 이웃 예언은 사13-23장, 겔25-32장, 암1:2-2:3에도 나온다)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술잔을 받아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하여금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친 듯이 행동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냈기 때문이니라”(15-16) “... 북쪽 원근의 모든 왕과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니라 세삭(바벨론)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26) “그들이 만일 네 손에서 잔을 받아 마시기를 거절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반드시 마셔야 하리라”(28)-하나님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이다

예언자의 감정적이고 상상적인 언어 사용, 말씨의 분명함, 율동적인 몸짓, 예술적 인품은 시인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그들의 예언의 바탕을 이루는 것은 워즈워드가 말한 '정적에서 솟아난 감정'의 산물인 시는 아니다. 내적인 조화 또는 안정과는 거리가 먼 동요, 불안, 불응의 정신에서 파생된 것이 그들의 예언이다. 예언자들이 관심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역사다. 역사는 안정을 모른다.
예언자는 '노래하는 성자도 아니고 '도리를 가르치는 시인'도 아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을 습격하는 자다. 양심이 끝나는 곳에서 그의 말이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예언자는 겉으로만 거룩하고 신성하며 두려운 모든 것을 부수는, 우상을 타파하는 이다. 확고부동한 진리로 숭상되는 신념들, 지상의 성소로 승격되는 기구들이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허상임을 폭로한다.(헤셸,<예언자들>)
 
6. 돌아오라(회개하라)!
6.1. 예언자는 <살피는 자>로서 또한 회개를 선포한다. 26:1-3을 보라. “너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 유다 모든 성읍에서 여호와의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자에게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게 한 모든 말을 전하되 한 마디도 감하지 말라 그들이 듣고 혹시 각각 그 악한 길에서 돌아오리라 그리하면 내가 그들의 악행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려 하던 뜻을 돌이키리라
 
[설명] 예언자의 선포가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는 것”(1:10)임을 기억하자. 곧 죄의 지적과 심판의 엄중함이 아무리 크고 강렬해도 그 마지막 말은 구원이다. 이것이 예레미야가 죄를 들추어내고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한 궁극적 목적이다. 그를 위해서는 <회개>가 있어야 한다.
 
6.2. 4:1-4; 9:25-26에서 진정한 돌아옴(회개) - 하나님께로 돌아옴 - 은 어떤 것인가?
 
[설명]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네가 흔들리지 아니하며(do not waver,NRSV) 진실과 정의와 공의로 여호와의 삶을 두고 맹세하면 나라들이 나로 말미암아 스스로 복을 빌며 자랑하리라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에게 이와 같이 이르노라 너희 묵은 땅을 갈고 가시덤불에 파종하지 말라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4:1-4) - 백성이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받아주실 것이다. 하지만 껍데기가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10:12)” 가시덤불은 그대로 둔 채 땅만 가볍게 파헤치지 말고, 밭을 완전히 갈아엎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들은 성전을 내세우고(7장), 언약의 표인 할례를 내세운다(4). 예레미야는 말한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다 벌하리니..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10:16)
 
6.3.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원할 것이라 너를 흩었던 그 모든 이방을 내가 멸망시키리라 그럴지라도 너만은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법에 따라 너를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만 여기지는 아니하리라”(30:11) I will chastise you in just measure, and I will by no means leave you unpunished. NRSV But I will correct you in justice, And will not let you go altogether unpunished.' NKJV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46:28)을 보라. 그리고 이 말씀을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4),“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43:25)와 함께 보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설명] 얄팍한 구원은 없다. 지금은 심판을 통과해야 한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다”(시99:8) O LORD our God, you answered them; you were to Israel a forgiving God, though you punished their misdeeds.(NIV) you were a forgiving God to them, but an avenger of their wrongdoings.(REB): ‘값싼 은혜’(본회퍼)는 아니다. “어떤 사람이 어느 날 회개를 끝내고 나오면서 기쁨과 마음의 평안을 느꼈다고 나에게 말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두려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하였다. 이에 대해 이 둘을 합치면 훌륭한 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또 이 두 사람의 결함은 각기 다른 사람이 가진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에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와 같은 것은 다른 일에서도 종종 일어난다”(팡세:757항)
 
○ 민수14:11-38을 보라. 가나안 정탐후 원망하는 그들! 열 번이나 범죄한 이스라엘을 향해,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를 듣고 용서하시지만 40년 광야길를 걷게 하신다.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아무도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한다. 죄-용서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 하나님 앞에 두려움과 떨림을 가져라!
 
♠ “그(고멜)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4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5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호3:3-5)
= 그러기에 회개는 “--없이 지내기”다. “--없이 지내기”가 지닌 의의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기간(과정) 이후에 구원(진정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7. 18:1-12 / 토기장이 이야기
7.1.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토기장이의 집으로 데리고 가셔서 무엇을 보여주시는가?(1-3)
 
[설명] 토기장이가 그릇 만드는 작업... 자기 마음에 드는 그릇과 들지 않는(자기 생각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은) 그릇! 자신의 생각(판단)에 따라 보관하고 부순다.
 
7.2.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6) 이것은 인간이 반드시 알아야 할 사실이다. 당신은 이 사실을 믿는가?
 
[설명] 하나님은 토기장이처럼 그런 권한을 가지고 있다. 바울은 이 이야기를 [하나님의 주권]의 의미로 설명한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20-21). 곧 우리는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사64:8) 인간은 하나님과 동등하지 않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들 수 없다.
 
7.3. 그런데 예언자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설명하는가? 곧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려할 때’(7), 또는 ‘건설하거나 심으려 할 때’(9), 하나님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바꾸실 의향이 있다. 바꾸는 힘은 무엇인가?
 
[설명] ‘그 악에서 돌이키면...’(8)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으면..’(10). 곧 하나님은 자신의 생각(그것이 예정이든 주권이든)을 기꺼이 바꾸시겠다는 말이다. 이것이 토기장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일이다.
 
이른바 ‘변함도 없고 감정도 없는 신성’개념은 히브리적이라기 보다는 희랍철학적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는 인간의 탄원과 이의 제기에 깊이 영향을 받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모세나 아모스의 기도를 통해 당신의 마음을 바꾸시거나 설득 당하시는 분이시다(출32:9-14; 암7:4-6).
여기에 인간의 반응을 구하고 그 반응에 반응하시는 하나님이 계신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역동적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협력하신다. 하나님은 인간과 씨름하시지 결코 강요하는 법이 없다.
토기장이와 진흙의 비유는 인간의 운명에 대한 하나님의 일방적인 예정을 지지하는 것인 양 잘못 이해하고 적용해 왔다. 이 비유는 겉으로 보면, 인간은 단지 그의 손에 쥐어진 진흙에 불과하며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자신이 결정한대로 우리를 만드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토기장이의 집을 방문한 예레미야의 이야기는 이와는 매우 다른 이야기를 전해 준다.(포슨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가>)
 
죄는 막다른 골목(cul de sac)이 아니고 범죄 또한 최후의 함정이 아니다. 죄는 회개와 돌아섬으로 씻어질 수 있고 범죄 너머에 용서의 새벽이 동튼다. 문은 결코 잠겨 있지 않고 파멸의 위협은 최후통첩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역사를 모양 짓는 하나의 의지가 있다. 곧 하나님의 의지다. 그리고 역사의 모양을 결정짓는 또 하나의 틀이 있다. 나라들의 행실이다. 인류 역사는 이 두 기둥사이에서 움직여 나아간다.”(헤셸 <예언자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a broken spirit).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겔33:8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반드시>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의 길에서 떠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9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의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7.4. <참조, 쟁점> 바울은 이 본문에 기초하여 로마9:22-23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말한다. 바울의 설명을 보라.
 
[설명] 바울의 글을 보자 - 토기장이시신 하나님에게는 만드신 두 개의 그릇이 있다. 진노의 그릇(22)과 긍휼의 그릇(23)이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심판 또는 긍휼히 여기심의 대상으로 각각 유대인과 이방인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은 주권은 어떻게 임하는지 보라. ①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이방인)에게는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신다. ② 영광 받기로 예비된 긍휼의 그릇(유대인)에게는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신다. 곧, ① 이방인에게는 오래 참으시며 심판을 수행하지 않으셨고(22) ② 유대인에게는 그의 긍휼의 풍성하심을 펼쳐 보이시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다(23). 그래서 ①은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기를(로마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②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기를 (요한10:10-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기대하신다. 따라서 중요한 사실은 “긍휼”의 주권, “은혜”의 자유다. 하나님의 주권(예정, 섭리)은 하나의 신비다.
마태20:1-16의 비유에서 주인은 불평하는 일꾼에게 말한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15). 곧 인간의 구원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의 의지(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자유다. 그런데 그 자유는 하나님 마음대로(恣意的,arbitrary)가 아니라 「긍휼과 은혜」로서 드러난다. 마지막에 온 사람에게도 한 데나리온(온전한 품삯)을 주는 은혜로운 주권이다.
 
7.5 이 토기장이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주권은 무엇이며 역사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바울의 설명과 모순인가?
 
[설명] 하나님과 피조물은 [토기장이-토기]의 관계와 같다. 그래서 하나님은 토기장이처럼 어떤 그릇은 심판하시고(깨뜨리고) 어떤 그릇은 보전하여(복 주시려) 하신다. 그런데 그 <심판-복주심>의 하나님의 계획이 실제로 하나님의 행동이 어떻게 옮겨지는지는 토기에 달려있다. (토기장이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 같은데도...). 곧 만약 그들이 돌아서면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신다(반대로 그들이 불의하면 복을 화로 바꾸신다). 하나님은 인간의 태도(회개)에 따라 당신의 뜻(계획)은 바꾸신다. 이런 전개는 [토기장이-토기]관계에 어울리지 않는 적용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을 중심으로 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자연스럽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주권이란, 인간의 운명이 미리 정해졌다거나 구원(심판)이 숙명이란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선택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일을 행하시는 분이며(롬11장), 진노하기로 예정된 이들을 향해서도 당신의 뜻을 기꺼이 바꾸시는 - 자비를 베푸시려는 – 분이다. 곧 (바울에 따르면) “은혜와 긍휼”이 하나님의 주권의 본질이다.(롬9:22-23절을 다시 보라). 관용 베푸심, 영광의 풍성함은 바울과 예레미야는 다르지 않다. 문제는 강조점인데, 바울은 <하나님의 행동>에 무게를 두며, 예레미야는 <인간의 회개>에 무게를 둔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말한다. “이 언약은 내가 너희 조상들을 쇠풀무 애굽 땅에서 이끌어내던 날에 그들에게 명령한 것이라. 곧 내가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순종하고 나의 모든 명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또 너희 조상들에게 한 맹세는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리라 한 언약을 이루리라 한 것인데 오늘이 그것을 증언하느니라 as it is this day.NKJV/ the land you possess today.NIV 하라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멘 여호와여 하였노라”(11:4-5)
 
“우리 주님께 헌신하면서, 이냐시오는 인간적 수단을 모조리 동원하였다. 그는 마치 그 수단들에 성공이 달려있는 것처럼 최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효과를 도모했다. 그와 동시에 그는 마치 이 수단들이 아무런 효과도 거둘 수 없다는 듯 오로지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하나님의 섭리에 매달렸다.”(구티에레즈)
 
○ 하여 ‘하나님의 뜻은 누구도 거역할 수 없다!’와 ‘인간은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있다!’ 둘 중 당신은 어느 것을 선택하겠는가? 로마서9-11장에서 전체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믿음의 길’을 설명한다. 그는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당신의 분명한 뜻을 갖고 계신다(9장)”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으로 인해 당신의 뜻을 바꾸기도 하신다(10장)” “하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뚫고 당신의 처음 뜻을 끝내 이루신다(11장)

정리 = 제2강에서 예레미야가 이스라엘의 범죄문제를 이토록 집요하게 다룬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1) 지금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2) 이토록 큰 범죄에도 하나님의 구원이 은혜로 임할 것이며, 3) 범죄에 대한 참된 깨달음이 구원을 위한 필수요소임을 말한다. ‘자신의 범죄가 무엇인지 모르면’ ‘하나님의 새롭게 하신 은사’와 그 앞에서 ‘돌아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러기에 구원에는 죄에 대한 자각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말하기(3:21이하) 앞서, 인간의 범죄에 대해 그토록 강하게 얘기했던 것이다(1:18-3:20). <죄에 대한 깨달음>(자신의 비참에 대한 인식-파스칼)이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우리가 심판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 뿐 아니라, 돌아서야 할 <새로운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아는 데 결정적이다. 이 때문에 예레미야(모든 예언자들)는 그토록 강하게(집요하게) 범죄를 지적했던 것이다. 그래서 야고보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4:17). 도대체 이것이 무슨 죄인가? 누가 이런 것을 죄라고 말하는가? 야고보의 말은 죄 목록 하나를 덧붙이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이런 일(선을 행할 줄 알면서 선을 행하지 않음)’을 죄로 여기고 그로부터 회개할 때, 진정으로 ‘선한 일에 열정을 지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게 되 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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