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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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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4 15:36:27
관리자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주기도문(1) 듣기

주기도문(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2007.1.10)


1. 마르틴 루터는 "주기도문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기도 중의 기도요, 모든 기도의 알파벳"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 참된 기도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은 단지 하나의 기도문이 아닙니다. 이 기도 속에는 삶이 함께 들어있습니다. 기도는 기원이며 고백이며 참여입니다.  주기도문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습니다
◆ 부름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하나님의 일을 향한 탄원
  주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주님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주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  인간의 일을 위한 간구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며,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 송영 /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옵니다. 아멘.


1. 기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일입니다
  오늘은 첫 부분, 부름에 대해서 살펴보려 합니다. 주님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여기서 아버지란 무엇일까요?
당시 많은 종교에서도 그들의 신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종교사에서 흔한 일입니다. 고대 그리스신화에 보면 모든 신들의 신인 제우스는 인간과 신들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아버지’란 이름은 개인마다 다양한 의미를 가집니다. 아주 넉넉한, 훌륭한 성품, 자기희생과 책임의 아버지와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무책임한 아버지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사람들에게 아버지는 또 다릅니다. 얼마 전 어느 아이가 아버지에게 데려준다고 하니 아버지의 폭력이 두려워서 그만 자살을 했다는 슬픈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처럼 그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아버지란 문화에 따라서도 다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버지는 매우 권위적인 분입니다. 아버지는 말이 보통 없고, 뭔가 두려운 분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런 가부장적인 아버지 상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요즘 와서 젊은 아버지는 정반대입니다. 어머니보다 더 자상한 아버지, 아이들과 아내와 평등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아버지는 권위와 능력의 상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존재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시대를 따라, 때로 개인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하나님 아버지」는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먼저 이 아버지란 말이 「예수님이 특별히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는 아버지에 대한 오해 가운데 하나로 아버지를 <남성 아버지>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남자일까? 우리는 사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성을 넘어섭니다.”

물론, 구약성경에도 14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입니다”(이사야64:8) “주는 우리 아버지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 옛적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사야63:16)
그럴지라도 이런 명칭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아버지란 호칭에 비하면 그 비할 바가 아닙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을 수없이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4복음서만 해도 170회 나옵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수가 많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에게서 와서 그 이름은 드디어 결정적이 의미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아버지’란 말은 ‘깊은 친근감’을 말합니다.  여기서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권위와 지배 복종의 관계’는 사라지고,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정답게 이야기합니다. 평안하게 대화합니다. 주님이 하나님을 아버지를 부르신 방법에 대해 살펴보십시오, 그것은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다」(요한17:21)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온전한 교제를 이루는 일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하십니다. 이는 이제 하나님은 두렵고 무서운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따뜻하고 위로 넘치는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로마서 8:14-5) "Abba! Father!"

하나님에 관한 아빠(Abba) 표상은 예수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수는 가까움과 친밀함 그리고 자애로움의 표상으로 하나님을 아빠로 부른다. 하나님은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아버지처럼 우리 가운데 현존하며, 우리는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이다. 아버지께서 돌보고 계시는 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고, 삶 전체를 전적으로 그분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 된다. (김명수)

이른바 “탕자의 비유-정확한 이름은 ‘자비로운 아버지와 두 아들의 비유’ -를 보십시오(누가15:11-32). 그곳에서 아버지 하나님은 동양의 권위주의적인 아버지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를 다시 돌아오는 아들 - 그는 철저히 아버지를 무시하고 떠났습니다 - 을 향해 달려 나가는 분입니다.

우리는 잘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는 - 그 사람이 힘 있는 사람이라면 -  자신의 뜻을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것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서는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말만하면 그분은 그것을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이들은 기도할 때, 바리새인처럼 중언부언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하늘 아버지는 너희의 형편을 잘 아신다’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부르며 기도합니까? 어떤 심정으로 그분을 예배합니까?
  어떤 마음으로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갑니까?
만약 내가 기도를 안 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을 내리실거야.
만약 내가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내게 화를 내리실거야
만약 내가 십일조헌금을 드리지 않으면 내 사업을 망하게 하실거야
만약 내가 정의롭게 살지 않으면 큰 화를 내리실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주님을 섬깁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주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은 분입니다. 그분을 「아버지」라고 마음으로 부르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아버지는 우리의 아버지십니다”(요한20:17).

어떤 시인은 자신의 아버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 뒷동산의 바위 같은 이름이다. 시골마을의 느티나무 같은 크나큰 이름이다” 넉넉한 분이라는 뜻이지요.

누가의 기도문은 간단히 「아버지여!」라고 시작합니다. 저는 때로 우리 교회의 어떤 분은 기도하면서 「아버지!」라고 수없이 되 내이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 또한 아무 말 없이 그냥 「아버지여!」라고만 말하며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말을 하지 않아도 그 말속에는 모든 기도가 들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아버지여!」 오늘부터 우리도 그렇게 기도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2.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의 아버지”라 부릅니다.
이 기도는 ‘나의 하나님’이면서 ‘우리의’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그리스도를 믿는 구체적인 공동체의 형제들입니다. 이는 예수 안에 있는 자,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서로가 형제요, 자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이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한1:12-13)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 저 형제도 그렇게 하나님을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이렇게 하여, 세리와 죄인이 하나입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입니다. 주기도문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교훈합니다’.(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100)

"우리 아버지"(pater hemon)는 주기도문이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공동체적 차원에서 드려지는 것임을 나타낸다. 그것은 나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공동체)의 기도이며, 동시에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공동체)를 위한 기도이다. 하나님은 나 개인의 아버지일 뿐만 아니라, 아울러 우리 모두의 아버지가 되신다.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요 자매로 이해된다. 따라서 "우리 아버지" 표상은 교회 구성원 사이의 연대성과 공동체성을 강화시킨다. (김명수)

기도의 자리는 은밀하지만, 기도의 내용은 이웃을 향한다. 우리는 한 형제라는 사실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비록 다툴 수 있습니다. 마음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고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 부름 속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형제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경쟁의 정글에서 삽니다. 심지어 교회마저 그렇게 서로 경쟁합니다. 전도하는 것도 ‘생명에 대한 사랑’보다는 오직 「자신의 교회」만 성장하기 위한 방법처럼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우리 아버지」란 기도는 이러한 이기주의를 극복하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서먹했던 형제를 떠올립니다. 소원했던 자매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하나 되어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여기 앉아 예배드리는 우리가 바로 하나님을 그렇게 불러야 합니다.
「우리 아버지!」 저 자신과 우리 모두가 이렇게 부르기를 빕니다.

3. <아버지-자녀>관계로 이 땅을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관계에서 우리가 조심할 것은 미성숙한 관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고 하는 것은, 우리자신 하나님 앞에서 마치 「유치한 아이」처럼 생각하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종교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많이 썼던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는 말합니다. ‘하나님이란 인간이 자신에게 있는 유아적인 무능력을 보상하기 위한 투사(投射)다’(보프,67 재인용). 다른 말로 하면 신앙이란 인간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갖는 것이며 특히 아버지-자녀관계의 표상은 인간이 자신을 ‘발육부진의 아이’처럼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가부장적인 문제와 함께 이 온정주의의 관계 또한 큰 문제입니다
그러나 과연 신앙이 그렇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그런 유치한 관계입니까? 저는 그렇게 질문하는 이들에게 게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을 어떻게 불렀는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가복음 14:36)

여기서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부름은 어린아이의 미성숙이 아닙니다. 오히려 죽음 앞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는 행동입니다.  그곳에는 인류를 위해 자신을 투신하는 아들의 간절한 기도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자신의 아들을 내어주는 아버지의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아버지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로 부름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자유, 그 자유를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다짐에서 쓰는 말입니다. 그것은 그 길로 접어드는 자의 힘찬 신뢰를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깊이 신뢰하면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한다. 이것이야말로 아버지란 말속에 들어있는 심오한 친밀성(보프)입니다.


4.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 그럼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분은 저 높이 계신단 말인가요?
먼저 우리는 이 말이 마태복음의 특징임을 기억합니다. 유대인들을 향한 복음서인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이 잘 아는 ‘하늘’을 가지고 하나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늘이란 이 '땅'과 대립합니다. 그곳은 하나님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그곳은 그 어떤 인간의 세력, 영의 권세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완전한 나라입니다. 그 어떤 악의 세력도 침범하지 못하는 하늘의 능력이신 주님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그곳에 계십니다. 영광과 위엄 속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그 같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믿는 것이니, 기도는 곧 온전한 신뢰를 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전능하신 능력에서 우리의 영육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하이델베르크 121항, 번역을 조금 고침)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기도의 첫 시작부터 우리 기도가 근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신뢰를 불러일으키고자 하신다. 믿음 가운데 기도하는 것을 거절하지 않으신다”(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제3부 120항)

“주기도문의 머리말은 곧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것인데, 이 구절은 언제라도 우리를 도와주실 능력이 있는 아버지에게 나아가는 자녀들처럼 거룩한 모든 공경심과 확신을 가지고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100)

그렇습니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특권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하늘의 하나님을 기억합니까?  그분은 “하늘에 계신 분”이기에 우리는 확신을 가지고 그분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도 온전히 그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온전히 신뢰합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누가23:46)
이것이야말로 아버지 언어의 절정입니다. 그 큰 고난 앞에서도 전적으로 자신을 맡깁니다. 죽음 앞에서도 아버지를 바라며 부활의 소망 속에서 평화롭습니다

“내가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하나님은 친근한 분이면서, 온전한 능력의 주님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시작하면서 이 같은 무한한 신뢰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5. 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라디아4:6) "Abba! Father!"
오늘 주기도문은 「아버지여!」라는 부름으로 시작합니다. 부름은 기도자의 기본자세입니다. 주님은 어떤 간구보다는 하나님을 부름이 먼저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그렇게 불러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가르쳐주신 부름입니다. 그렇게 부르면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부름 자체가 이미 하나의 기도입니다. 그 부름 속에서 우리의 모든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하여, “주기도문의 열쇠는 우리가 아버지란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 데 달려 있습니다”.(로흐만,37). 얼마나 절실하게, 얼마나 풍성하게 얼마나 친밀하게 느끼는 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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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의이름이 거룩히여김을 받으소서. 한성국 2007/01/17
   <하나님나라를 향하여 (제4판)> 강좌 엽니다 한성국 2012/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