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강의
주기도문

911

2007-02-22 21:23:35
관리자
(7) 유혹에 빠지지 말고 악에서 구하소서
주기도문(7) 듣기

1.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말게 하소서
  시험이라고 번역한 희랍어 peirasmos 는 크게 다음과 같은 뜻으로 쓸 수 있는 말입니다. trial, test, temptation, enticement  
trial(NRSV) temptation,(NKJV,NIV,NASV,KJV,RSV) test(NEB, JB)입니다
그것은 <시련>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시련에 빠지지 말게 하소서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유혹>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라고 옮길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저는 유혹으로 읽습니다.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옵소서. 지금 악의 세력들로 인해 시련을 만나고 있습니다. 어떤 때는 폭력과 죽음의 위협 박해로서 우리를 하나님나라에서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그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를 유혹하여 넘어뜨리지 못하게 하소서
지금 악의 세력들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하나나라보다 더 좋은 삶이 있다, 더 즐겁고 행복한 것이 있다,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 세상의 여러 가지 풍조에 따라 살자
이런 가운데 우리는 기도합니다. “우리를 유혹에 빠져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2. 하여, 사람은 언제나 시험(유혹)에 직면한 존재다
답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는 이런 뜻입니다. “우리 자신은 너무나 연약하여 한순간도 스스로 설 수 없으며,1 더욱 우리의 불구대천의 원수인 마귀와2 세상과3 우리의 육체가4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하나이다. 그러하오니 주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이 영적싸움에서 패하여 거꾸러지지 않고5,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우리의 원수와 언제나 당당하게 맞서게 하소서”.6
1)시편 103:14-16; 요한15:5 2)고후11:14; 에베6:10-13; 벧전5:8 3)고후15:18-21; 요일2:151-16 4)로마7:23; 갈라5:17-21 5)마태10:19-20; 26:41; 고전10:12-13 6)살전3:13; 5:23; 야고4:7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127항)

니체는 인간을 초인과 영웅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가르치는 기독교를 노예의 도덕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인간을 누구나 유혹에 시달리는 존재로 봅니다. “우리 자신 스스로는 너무나 연약하여서 어느 한 순간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공격하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마귀와 세상, 육신으로부터 끊임없이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사실 우리의 삶은 날마다 유혹과 시험을 받습니다. 이곳저곳 악에게서 공격당하는 삶입니다. “유혹이 우리 앞뒤를 에워싸고 있다. 우리는 이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루터)

우리는 유혹받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곳곳에서 시험을 겪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극히 연약한 사람이라는 이 뼈저린 인식은, 숨길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인간의 위대성은 그자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데 있다. 나무는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비참한 일이다. 하지만 비참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은 위대한 일이기도 하다”(파스칼,1992:147).
그런 의미에서 성경은 그 처음부터 마지막 장까지 유혹받는 인간의 책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유혹에서 시작한 창세기는, 로마제국의 압제와 악의 세력에게서 시험받는 성도들의 이야기인 요한계시록으로 끝납니다.  

2. 그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유혹과 시험이 있습니까?
먼저 지금 우리를 공격하는 원수들은 무엇입니까? 교리문답에 따르면 그것은 <육신, 세상, 마귀>입니다.
  먼저 <육신>이란 말은 많은 오해를 받는 말입니다. 단지 우리의 육체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5:17)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7:19-20)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롬7:22-23)  그리하여 우리는 함께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7:25)
이 모두는 우리 안에 있는 그릇된 욕망과 불의를 말합니다
물론, 세상 또한 단순히 이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구조와 조직입니다. 그것은 하나님나라와 맞서는 불의한 사회질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마귀는 누구입니까? 이것은 특히 영적인 권세입니다 “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은 주님 안에서 그분의 힘찬 능력으로 굳세게 되십시오.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나님이 주시는 온몸을 덮는 갑옷을 입으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인간을 적대자로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악한 날에 이 적대자들을 대항할 수 있으며 모든 일을 끝낸 뒤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엡 6:10-13)

“구원받는 자로서 당신이 대항해 싸워야할 대상은 단순히 당신의 개인적 결점이나 흠들이나, 당신의 사소한 유혹이나 허물이 아니다. 이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맞서는 권세들에 굴복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다. 악은 거대하고, 우주적이고, 조직적이고, 교묘하고, 광범위하고, 실제적인 존재다. 악의 권세들은 언제나 자신을, 우리가 누려야할 자유의 모습으로, 혹은 우리가 따라야만 하는 필연성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나타난다.”(윌리몬)

그렇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맞서야 할 악의 세력입니다.
그럼 왜 이런 일이 우리에게 닥쳐옵니까? 이 시련이 오고 그것이 시험이 유혹이 됩니까?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면, 육신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나라를 향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시험이 오지 않을 것이고, 전혀 유혹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떠나오지 않았다면 광야의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었을 것이며, 그래서 유혹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주기도를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어떤 우주적 전쟁의 한복판에 던져지는 것을 뜻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지금 이 세상은 크게 잘못된 세상이다. 이는 마치 무언가가, 누군가가 하나님을 거슬러 조직적인 반란을 일으킨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 때 당신이 이 기도를 충실히 드린다는 것은, 또 당신 삶을 이 기도에 일치시키고자 애쓴다는 것은, 그 반란세력의 공격 대상이 되기를 자처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시련의 시기에 하나님께 구원과 구조와 도움을 청하는, 주기도의 이 간청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이란 어떤 모험, 어떤 여정, 어떤 거대한 드라마 속으로의 참여를 의미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이 기도를 기도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리스도의 백성으로 징집되지 않았더라면 갖지 않았었을 문제들을 우리가 갖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악의 권세들은 자신의 영토를 한 치도 쉽게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구원 받고 있다는 말은 내가 하나님이 새롭게 탈환하신 영토가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악의 권세들과 싸움을 벌이시는 그 전쟁터가 된다. 이렇게, 이 기도를 드리는 일은 말하자면 전쟁에 참여하는 일이다:
우리가 주기도를 기도하면 악마들이 들고 일어난다. “기존 세력들”(power that be)은 한 사람이 “우리 아버지…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하며 자기들이 묶어놓은 사슬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을 참지 못한다.“(윌리문)

3. 하여, 우리는 시험에서 구원해 주소서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폭풍과 격랑으로부터 안전한 포구가 아니다. 우리는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지체들이지만,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힘센 권세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구원 받기를 기도하는 이들이다.” (윌리몬)

여기서 우리가 "시험에 들다"는 "시험을 당하다"보다는 "시험에 굴복하다"를 뜻합니다. 이것은 시험을 면제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전혀 유혹을 받지 않는 초월적 존재로 만들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아예 지구를 떠나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세 가지 시련 속에서 유혹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신 것”(마태4:1)처럼 유혹은 성령의 이끄심입니다. 시련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시험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유혹을 받은 것도 결코 흠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우리에게 시험을 면하게 해 주십시오. 우리에게서 유혹의 요소를 모두 없애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말처럼  “우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기에, 우리는 깨어서 믿음을 굳게 하고 그와 싸워야 합니다”(벧전5:8-9). 시험은 그리스도인라면 누구나 반드시 만날 일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우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알기에 우리는 결코 놀라지 않아야 합니다(벧전5:9). 문제는 그 시험에 빠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하더라도 굴복하지 않도록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시험이 신학자를 만든다!”(로흐만,190)는 말처럼, 시험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가는 힘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능력이 기도하는 우리에게 임함을 믿습니다.

“기독교는 인간에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진리가 있다고 가르친다. 즉,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과 인간의 본성에는 인간이 하나님께 합당하지 못하게 하는 부패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모두를 아는 것은 인간에게 동등하게 중요하다. 인간의 비참함을 인식하지 않고 하나님을 아는 것과, 인간을 비참함에서 해방시킬 구속자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비참함을 아는 것은 동등하게 위험하다. 두 가지 진리 중 한 가지만을 아는 것은, 하나님을 안다고 하나 자신의 비참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철학자의 교만을, 자신의 비참함을 인식하지만 구속주를 알지 못하는 무신론자의 절망을 가져온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이러한 두 가지 진리를 아는 것이 필연적이면 하나님은 자비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를 인식하게 하신다. 기독교는 이를 행한다. 기독교의 기초는 바로 이것이다”(파스칼,201쪽)

우리는 이처럼 악의 세력에 포위되어 있지만, 이 기도로서 그 유혹을 이길 수 있습니다. 유혹이 있지만, 그와 함께 그 유혹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그러하오니 주님의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드시고 강하게 하셔서, 이 영적싸움에서 패하여 거꾸러지지 않고5, 마침내 완전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우리의 원수와 언제나 당당하게 맞서게 하소서”((교리문답)

4. 예수님은 우리의 시험에 함께 하신 분으로 우리를 구원합니다. .
왜 우리가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예수 그리스도께 간구합니까? 주님이 능력이 많기 때문입니까? 주님이 사랑이 무한하시기 때문입니까? 예!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 시험과 유혹의 문제”에서는 이보다 다른 곳, 깊은 곳에 기도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시험에 빠지지 않기를 기도드리는 그분”이 친히 모든 일에 우리처럼 시험을 받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약함과 아픔의 연대성 속에서 그분은 그 유혹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브리서4:15).

그분은 우리처럼 가난과 굶주림의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우리처럼 그 고난을 피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우리처럼 외로움에 내몰렸으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지 않으신 일이 없었습니다. 이 강력한 연대성이 바로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힘입니다

얼마 전 저는 어느 강사가 텔레비전에서 강연하는 것을 들으면서, 우리가 “저렇게 말해도 되는가”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설교 중 청년실업을 이야기하면서 그는 말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실업에 대해서 뭐 그리 크게 걱정하는가? 특히 청년들이 실업에 대해 왜 그렇게 의기소침하냐? 하나님을 믿는데 까짓 직업이 뭐 그리 소중한가?  뭐 그리 대단한가?” 물론 그가 인용하는 성경구절과 함께 그 말은 모두 맞는 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설교는 참으로 아쉬운 무엇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는 알고 있을까? 주위를 둘러보며 알알보려고 애쓰기나 했을까? 2000년대 우리 청년들의 모습들을 보라. 졸업 후 수년을 기다려야 겨우 가질 수 있는 젊은이들 ... 9급 공무원이라도 들어가기 위해 수백대 일의 시험을 준비하는 그들, 그 오랜 세월 공부했지만 시간강사로 평생을 살아야하는 인재들! 지방대 출신이 약점이 되어 시험마다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 3년, 5년 지내다가 하는 수 없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단계판매회사에 들어갔다가 카드빚만 지고 나와야 우리의 아들딸들! 전셋집 하나 얻을 돈이 없어 결혼을 해야 할 지 망설이는 이들이 않는가?
그런데 이런 일들을 그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요! 무슨 개그맨처럼 “청년실업! 그 까잇 것!”가볍게 말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우리 주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닙니다. 그 놀라운 연대성은 성경 곳곳에서 hq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For our sake he made him to be sin who knew no sin, 그렇게 하여 그분은 우리의 의가 되었고, 우리도 의롭게 되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롬8:3) in the likeness of sinful flesh, and to deal with sin, he condemned sin in the flesh,
<죄를 삼았다, 죄를 정했다>는 이 표현 - 지금은 이 신비로운 표현의 깊이에 대해 말할 자리가 아닙니다 - 은 주님이 얼마나 깊이 우리의 삶(죄의 현실)과 연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은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기”(히2:18)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를 시험을 면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한다고 만사형통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연대성에서 볼 때, 기도하면 단번에 해결된다고 주장핳 수 없습니다. 하여, 주님이 우리를 결코 시험에 빠지도록 그냥 두지 않으신다는 말은, -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일은 문제없어!”식의 「종교적 낭만주의」가 아니라  - 우리의 아픔에 눈물에 약함에 고뇌에 함께 하시면서 그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 (히4:15-16)

5. 다시 기도합시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26:40-41)
매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시험에도 장사가 없습니다. 우리의 의지와 신앙의 연륜, 목사와 장로와 같은 직분... 그 어떤 사람도 시험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니 그 자체로는 누구나 시험에 빠집니다. 단 하나 우리가 할 일은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며,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입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5:7). 이처럼  주님은 친히 그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우리를 구원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은 그분께 대항하는 그 어떤 적보다 더 큰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악의 세력을 인정하고 심각히 여겨야 하나, 그렇다고 결정적으로 크게 여겨서는 안 된다. 악은 위협적인 세력이긴 하지만, 그러나 패배한 세력이다. 격렬한 전쟁 중에 있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 전쟁의 승자가 누구인지를 이미 알고 있다. 악으로부터 구원받기를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는 자신만의 힘으로는 악에게 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기도는 참으로 정직한 기도다. 지금 우리 삶은 기존 세력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약한 존재들로서 우리는 도움의 손길을 찾고, 그 때 우리는 확실히 구원을 받는다”. (윌리몬)

“나는 언제나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란 다섯 번째 간구로 잠이 들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란 여섯 번째 간구로 일어난다.” (루터 / 로흐만,189)

그렇지요. 우리는 오늘 하루 우리의 죄에 대해 주님께 용서를 구하며, 또 형제를 용서한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잠이 듭니다. 나아가 닥쳐올 여러 시련과 유혹의 현실을 바라보며 그것에서 건져주실 주님의 힘과 사랑을 믿으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우리가 일어나 일하는 세상은 악의 세력들이 구체적으로 존재합니다. 하나님나라의 뜻을 이루려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세력이 우리에게 시련이 되고, 유혹이 됩니다. 넘어뜨리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도 언제나 이 기도를 통해 다시 일어섭니다.



* 정경선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4-02-1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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