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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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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1 16:32:09
한성국
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 <네이션과 미학>



고진(2007) <세계공화국> 조영일 도서출판b
고진(2009) <네이션과 미학> 조영일 도서출판b
 
 
고진의 책은 꼭 하나의 주제를 다룬다기보다 그가 관심 갖고 있는 여러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래서 각 책에 대한 요약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위 두 책에서 뽑은 글 몇을 소개한다
 
 
 
제국의 해체는 라틴어나 로마교회로부터의 자립이라는 형태로 생겨났습니다. 아마 루터에 의한 성서번역은 이것들을 겸비한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일반적으로 종교문제라고 생각되고 있지만, 좀 더 복합적인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로마교회에 대한 그의 저항은 직접적으로는 면죄부에 대한 부정이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말하자면 봉건세력으로 서의 로마교회가 가진 경제적 지배에 대한 반항에 다름 아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은 '제국'의 하위에 있던 부족국가의 자립을 내포했고, 따라서 그것은 제국의 법이나 교회법을 넘어선 주권국가나 봉건적 제도들로부터의 해방을 구하는 농민전쟁을 야기했던 것입니다.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루터가 <성서>를 속어(고지(高地)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 다른 의의를 가졌다는 것입니다.(165) 즉 그것은 <성서>를 대중에게 가깝게 하고 종교개혁을 확대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 표준적인 독일어의 모체가 되었습니다.(166)(고진,2007:165-166)
 
 
애덤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말하는) 동정(공감)이란 상대의 몸이 되어서 생각하는 상상력입니다. 허치슨이 말하는 도덕감정과 스미스가 말하는 그것과의 사이에는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허치슨이 말하는 도덕감정은 이기심과 대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스미스가 말하는 공감은 이기심과 양립하는 것입니다. 무릇 상대의 몸이 되어서 생각한다면, 상대의 이기심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스미스는 각자가 이기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전체의 복지(welfare)를 증대시킨다는 것, 그러므로 laissez faire (자유방임)로 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 경제학자입니다. 그러나 스미스는 본래 윤리학자였습니다. 아니 그보다 마지막까지 윤리학자였고 그의 경제학(political economy)은 윤리학적 체계의 마지막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와 같은 도덕감정론과 약육강식을 긍정하는 laissez faire 의 시장주의는 양립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문제는 종종 다음과 같이 생각되고 있습니다. 스미스는 한편으로 laissez faire 를 설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그것이 불가피하게 초래하는 폐해를 깨닫고 있었는데, 거기에 그의 윤리학이 있다고 말입니다. 이리하여 스미스는 후생경제학의 선구자라고 이야기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미스가 이기심을 긍정하고 또 동정을 설명한 것은 특별히 모순되는 것은 아닙니다. 스미스가 말하는 공감은 연민이나 자비와는 다릅니다. 기독교-불교에서도 이슬람교에서도 마찬가지지만 - 에서는 이기심의 부정이 설명되고 연민이 설명됩니다(174) 그러나 스미스의 경우 이기심과 공감(동정)은 배반되지 않는 것입니다. 무릇 스미스가 말하는 공감은 이기심이 긍정되는 상황, 즉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서 비로소 출현하는 것입니다. 공감은 공동체에 있었던 호수성을 회복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감은 상품교환 원리가 지배할 때에만 출현하는 '도덕감정' 또는 '상상력'이고 공동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175)(고진,2007:173-175)
 
 
프랑스혁명에서 '우애'라고 불린 것은 스미스가 공감 또는 동류감정(fellow feeling)이라고 부른 것과 같습니다. 우애라는 감정은 원래 기독교적인 기원을 갖습니다. 그러나 스미스가 말하는 공감이 종교적 연민과 달리 이기심이 승인되는 상태에서 생겨나는 것처럼, 이 시기의 우애는 기독교적인 관념과 비슷하지만 다른 것입니다. 우애는 프랑스혁명의 직인적 노동자들의 어소시에이션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애는 혁명과정에서 네이션에 흡수되어 갔습니다.(고진,2007:175)
 
 
 유럽에서 종교개혁은 일반적으로 종교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보다 복합적인 의미를 품고 있다. 로마교회에 대한 그의 반항은 직접적으로는 면죄부에 대한 거부였지만, 그것은 동시에 봉건세력이었던 로마교회의 경제적 지배에 대한 반항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그런 의미에서 '제국' 하위에 있던 부족국가의 자립을 잉태하고 있었고, 따라서 그것은 제국의 법이나 사회법을 넘어선 주권국가만이 아니라 봉건적 제도로부터의 해방을 구하는 농민운동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루터가 성서를 속어(고지(高地)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 남다른 의의를 가졌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성서를 대중에 가깝게 만들고 종교개혁을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후 표준적인 독일어의 모체가 되었다.
이 경우 중요한 점은 속어가 문자로서 씌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세계언어가 속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루터의 속어에 의한 번역이 내셔널한 독일어를 형성시켰던 것은 그것이 바로 성서의 번역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구텐베르크인쇄술 혁명이 있었다는 것도 간과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성서번역이 당시 출판산업을 성립시킨 장본인이라고 봐야 한다. 성서의 속어역은 사용된 속어(고지독일어)에 고귀하고 신성한 인상을 부여했다. 즉 그때까지의 그리스어, 히브리어, 라틴어와 같은 '제국의 언어'에 필적하는 격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러나 내셔널한 언어는 그것이 문장어(라틴 어나 한자어)로부터의 번역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 망각되고 직접적인 감정이나 내면에서 나온다고 생각되는 시점에서 완성된다. 즉 혜르더와 같은 낭만파 철학가가 '언어의 기원'을 고찰하기 시작했을 때에는 이미 내셔널한 언어가 완성되어 있었다. 그들이 발견하는 음성언어는 이미 문장어(제국의 언어)가 번역된 것이다. 다른 관점에서 말하자면, 그들이 발견하는 감성은 이미 이성에 의해 매개되어 있다. 앞서 나는 낭만파처럼 감성과 오성의 종합에서 시작하는 것을 '미학적'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바로 언어의 레벨에서도 말할 수 있다. 피히테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고진,2009:55-56)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역사와 반복> 한성국 2016/06/03
   가라타니 고진 <근대문학의 종언> 한성국 201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