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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나눔

373191

2016-06-03 16:21:52
한성국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역사와 반복>


가라타니 고진 <세계사의 구조> 조영일 도서출판b 2012년
가라타니 고진 <역사와 반복> 조영일 도서출판b 2008년
 
 
종래의 마르크스의의 사회구성체 역사는 ‘생산양식’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해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라보았다. 그것이 유명한 ‘역사적 유물론’이다.
그런데 가라타니는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을 통해 원시공산제사회(씨족사회)에서부터 현재의 자본제사회까지의 인류 역사를 새롭게 서술하고 있으며 나아가 자본제사회 이후에 대한 미래전망까지 제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세계사의 구조>는 맑스주의를 새롭게 재해석함으로써 학술적 영역을 보다 풍요롭게 만들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가라타니의 최근 연구에서의 키워드는 국가 간 경제적 격차, 전쟁, 환경 파괴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현재의 자본제사회가 가져오는 가장 핵심적이고 필연적인 문제이다. 이 책은 바로 이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극복해보고자 하는 가라타니의 각고의 연구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출판사)

 
 나는 보편종교가 교환양식D로서, 즉 A, B, C를 부정하는 형태로 나타났다고 서술했다.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에서 전형적으로 보인다. 신약성서에서 그것을 보여주는 예를 들어보자. 첫째로 사제 · 율법학자에 대한 비판이 있다. "너희는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구나.(마가복음,7장 9절) 그리고 가족 · 공동체에의 거부가 있다.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 그리고 자기 목숨까지 버리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누가복음,14장 26절) 그리고 예수는 화폐경제와 사유재산이 가져온 부의 불평등 · 계급사회에 항의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가복음,2장 17절) 여기서 '죄인은 범죄자만이 아니라 세금 징수인이나 매춘부와 같이 꺼리는 직업에 종사하는 자도 의미한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경제적인 문제이다. '죄'는 사유재산에 있다. "너희 중에 누구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누가복음,14장33절)
그리고 예수가 설파한 것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신을 사랑하라'와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이다.(마가복음12장 31절) 그런데 예수가 말하는 '사랑은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그것은 '무상의 증여'를 의미한다. 예수의 교단은 엥겔스나 카우츠키가 강조한 것처럼 '공산주의'적이었다. 그것은 예수의 사후에도 이어졌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베드로)의 말을 받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사도행전, 2장 41-42절) “믿는 무리가...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토든 물건을 서로 공유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한 명도 없더라‥‥‥‥ 밭과 집 있는..”(행4:32-35)...
하지만 그와 더불어 기독교단도 변질되었다... 포교가 진행되면서 정주자의 집단이 된다..(221)...
초기단계에서는 복음서에도 씌어져 있는 것처럼 '신의 나라가 지상에서 실현된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다가온다고 하지만 그와 같은 종말론적 열광이 가라앉자. '신의 나라는 천상화(天上化)된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비정치적이 된다. 이로부터 예수의 언동을 해석하게 된다. 예를 들어,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겨라, 자루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 칼을 살지어다. (누가복음,22장 36절) 즉 무장을 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면은 사라지고, "악한 자에 맞서지 마라"는 것이 강조되게 된다.(222)(고진,2012:220-222)
 
 
노동자가 소비자라로서 행동하는 것이 눈에 띄자, 사람들은 ‘소비사회’나 '대중사회’께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마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본래 산업자본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새로운 소비자로서 출현한 것이다. 즉 노동자가 동시에 그들이 생산한 물건을 다시 사는 소비자로서 나타났을 때, 비로소 산업자본주의는 자기재생적 시스템으로서 자율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제2국면에서 생각하는 할 자본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은 주인에 대한 노예의 투쟁과 비교된다. 하지만 제3국면에서는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투쟁방식이 보이게 된다.
 앞서 인용한 마르크스의 말을 재인용해보자. "자본을 지배와 예속의 관계로부터 구별시키는 것은 바로 노동자가 소비자 및 교환가치의 조정자로서 자본과 상대하는 점, 화폐소지자의 형태, 화폐형태에서 유통의 단순한 기점-유통의 무한히 많은 기점 중 하나-이라는 점인데, 여기서는 노동자의 노동자로서의 규정성이 소거되고 있다." 이제 이것이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한다는 점이 명확하다. 노동자는 개개의 생산과정에서는 예속된다 하더라도, 소비자로서는 그렇지 않다. 유통과정에서는 역으로 자본은 소비자로서의 노동자에 대해 '예속관계'에 놓인다. 그렇다면 노동자가 자본에 대항할 때, 그것이 곤란한 장이 아니라, 자본에 대해 노동자가 우위에 있는 장에서 행하면 된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생산지점에서 노동자는 경영자와 같은 의식을 가지기 때문에, 특수한 이해(利害) 의식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예를 들어, 기업이 사회적으로 유해한 것을 하더라도, 노동자가 그것을 제지하거나 고발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생산지접에서 노동자가 보편적인 관점을 가지는 것은 어렵다. 그에 반해 예를 들어 환경문제에 관해서는 소비자 · 주민 쪽이 민감하고, 곧바로 세계시민의 관점에 설 수 있다. 즉 노동자계급은 제3국면에서 보편적 '계급의식'을 갖기가 용이하다고 해도 좋다.(411)
자본에 대항하는 운동은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이런 이해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사회운동의 중핵은 노동자로부터 소비자나 시민으로 이동했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임금노동에 종사하지 않는 소비자나 시민은 불로소득자(이자생활자)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비자란 프롤레타리아가 유통의 장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라고 해야 한다. 그렇다면 소비자운동은 바로 프롤레타리아운동이고, 또 그와 같은 것으로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시민운동이든 마이너리티나 젠더 운동이든 그것들을 노동자계급의 운동과 다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자본은 생산지점에서는 프롤레타리아를 규제할 수 있고, 적극적으로 협력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그곳에서의 저항은 대단히 어렵다. 이제까지 혁명운동에서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정치적 스트라이크가 제창되어 왔지만, 항상 그것은 실패해왔다. 하지만 유통과정에서 자본은 프롤레타리아를 강제할 수 없다. 일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이 존재하지만, 사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통과정에서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이란 말하자면 보이콧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비폭력적이고 합법적인 투쟁에 대해서는 자본이 대항할 수가 없다.
... 이상으로 명확한 것은 생산과정에 대한 과도한 중시와 유통과정의 경시가 자본의 축적과정에 대응한 대항운동을 실패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것을 시정하는 데에는 좀 더 근본적으로 사회구성체의 역사를 '생산양식'이 아닌 '교환양식'에서 보는 시점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413)(고진,2012:41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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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파르트는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 이미지가 현실을 형성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실천한 최초의 정치가였다. 본래 그는 그 존재 자체로는 나폴레옹의 조카라는 표상 이외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표상의 철저한 활용은 그가 황제가 되어 두 번이나 개최된 만국박람회에 대해서도 정확히 들어맞는다. 그러나 실은 보나파르트의 실제 쿠데타조차도 군사적이라기보다 그 같은 '이벤트'로서 이루어졌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는 착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착한 사람처럼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서술했다. 그는 근대정치가 이미 표상에 기초한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꿔 말해 기호가 의미하는 것은 지시대상과 다르다는 인식이다. 마키아벨리가 실제로는 좀 더 악랄한 '마키아벨리언'인 권력자들로부터 항상 비난받은 것은 기호가 갖는 지시대상으로부터의 자립성이 실은 그것을 활용하고 있는 리얼리스트 작가로부터 부정되어온 것과 같다.(34) 보나파르트에 관해 보들레르는 만약 이처럼 인쇄물과 신문을 이용한다면 누구라도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들레르와 더불어 시작된 시(詩)의 상징주의는 이 같은 표상상의 전환에서 보나파르티슴과 나란히 하고 있다. 어쩌면 브뤼메르 18일에는 19세기적이라기보다도 1930년대의 나치즘에서 혹은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현저하게 보이는 경향이 노출되고 있다. 그것은 '대중사회'의 초기적 현상이라고 해도 좋다. 1848년 혁명에 참가한 이도 마르크스가 말하는 것 같은 '프롤레타리아트라기보다도 벤야민이 말하는 도시 군중(대중)이었다. 그들도 '계급을 이루고 있지 않은' 계급이다. 아니 그보다도 1848년 프랑스에서는 '대표되는 사람‘ 측의 고전적 계급분절이 거의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고 말해야 한다.
마르크스가 그런 사항을 고찰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지시대상으로부터 유리된 기후 실체적 계급과 결부되지 않는 정치적 담론을 비판하고 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조소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이 19세기적 리얼리즘으로 씌어지지 않았다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35)(고진,2008:34-35)
 
 
일본인 역사가 사카구치 안고 <일본문화사관(1942년)>에서 16세기 일본의 연구에서 (당시 예수회 선교사) 프란시스코 하비에르가 선종(禪宗) 승려와 논쟁한 기록을 인용하고,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는 앞서 인용한 부분이 좀 더 자세히 이야기되고 있다.
<즉 선(禪)에는 선(禪) 세계만의 약속이 있어 그런 약속 위에서 논리를 가지고 놀 뿐입니다. 모두가 먼저 주고받은 약속이 있고서야 비로소 성립한 세계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처란 무엇이냐?"라고 물으신다면‥‥“무(無)다”‥‥“그것은 똥 치우는 막대기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서로 그런 약속 위에서 알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얼굴만의 대화입니다. 알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부처는 부처이다. 똥 치우는 막대기는 똥 치우는 막대기다. 라는 평범하고 진지한 논리 앞으로 나가면, 이와 같은 논리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매우 지당한 논리 앞에 나와서, 그것을 근본적으로 뒤엎을 수 있는 힘이 무엇이고 어디에 있는지 물으면, 그것은 실천이라는 것과 사상이라는 것이 합일하는 곳에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삶의 방식은 선종에서는 그야말로 곤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종이라는 것은 약속 위에 서있는 관념만의 것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며, 실천이 없습니다. 깨달음이라는 것을 관념적으로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에. 지력에 의지한다고 해도 실제 자신의 힘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 승려처럼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종교와, 그 실제적인 행동 앞에서 선승은 상당한 위협을 느끼는 것입니다(230). 자신의 실력 없음. 초라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선종을 믿는 자가 승려임에 도불구하고 가톨릭으로 전향하는 것이 크게 유행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안고는 근대의 합리주의적 사고로 선종의 논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기독교가 선종보다 합리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부처는 부처이다. 똥 치우는 막대기는 똥 치우는 막대기다 라는 논리는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의에 대해서도 제출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즉 신은 신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왜 인간 예수가 신인가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때 기독교 선교사가 선종을 압도한 것은 교의의 이론적 합리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몇 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극동까지 포교하러 온 그들의 실천적 비합리성에 의해서다. 그러나 합리적인 것은 그 자체 비합리적인 의지와 열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닐까? 반근대의 '비합리주의'가 설친 1930년대에 안고는 철저하게 합리적이고자 했다. 그것은 '합리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예를 들어, 같은 시기에 <유럽학문의 위기와 초월론적 현상학>을 쓴 후설은 그것을 다음과 같은 언어로 결론짓고 있다. "인간은 이성적이고자 의지하는 것에 의해서만 이성적일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이 '의지' 그 자체는 합리적이지 않다.(231)
요컨대 기독교인가 불교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안고에게 실천적으로 타자에 관여하지 않는 사상 따위는 어떤 것이든 의미가 없었다. 안고는 공개논쟁에서 패하여 가톨릭으로 전향한 선종 승려들을 조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다. 그와 같은 것이 가능했던 것은 이 시기뿐이었기 때문이다. 또 예수회가 그와 같은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창설자의한 사람인 하비에르 자신이 일본에 왔던 이 시기뿐이었다. 그 이후 예수회가 이와 같은 힘을 가진 적은 없었다. 그것은 국가의 식민지주의와 결탁한 기성 교단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불교도 어느 일정한 역사적 시기에는 그와 같은 '사상-실천'의 힘을 갖고 있었다고 해야 한다.(232)(고진,2008:23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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