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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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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1 12:42:17
한성국
강만길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강만길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1978 창작과비평사, 306쪽 
 
1978년에 나온 책이니, 꽤 오래된 책이다. (지금은 절판된 책이다). 이 책은 당시 금서여서, 대학시절 겨우 구해 눈을 피해 읽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조금이라도 정부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다른 견해를 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 글 가운데 <한글 창제의 역사적 의미>란 글을 소개한다. 당시 내게 매우 신선했던 글이었다. 올 한글날을 지내면서 옛날 책이지만 올린다.
 
 
 
한글창제의 역사적 동기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문제로 집약된다. 첫째 고유의 문자를 가지지 못한 국가적 체면과 여기에서 나온 민족의식의 문제, 둘째 백성이 글을 알지 못하여 백성 스스로가 불편하였거나 혹은 치자층과 백성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불편하였던 점, 세째 글을 모르는 백성들의 처지를 세종대왕이 어여쁘게 혹은 애닯게 여긴 점 등이 그것이다.
 
하나의 역사적 사실에는 언제나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되어 있고 한글 창제의 경우도 예외일 수 없다. 어느 개인의 능력이나 심리상태가 역사적 사실의 중요 원인으로 부각되면 역사가 우연의 소산물로 이해되거나 영웅주의적 역사관에 빠질 위험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역사 속에서의 개인의 역할을 생 카할 때 우리는 흔히 어ㄸ너 착각 속에 빠지게 된다. 개인의 역량을 너무 앞세움으로써 그것을 지탱하고 있는 역사적 여러 조건이 가리어지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국가적 체면이나 왕의 백성에 대한 어여삐 여김이 중요한 원인이 되어 한글이 창제되었다고 생각하는 역사인식 태도는 역사를 왕이나 영웅의 업적 중심으로 혹은 소수 지배계층의 생활 중심으로 엮었던 지난 시대의 유물에 지나지 않는다. 한글 창제의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다시 의문이 제기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첫째는 한글을 만든 것은 분명히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었지만 그들로 하여금 한글을 만들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은 누구 인가 하는 의문이며, 둘째는 한글이 정말 전적으로 어리석은 백성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우선 첫째 의문의 답을 구해 보자. 우리의 생각으로는 한글을 만들게 한 것은 백성세계의 변화이며 그것은 또 15세기 우리의 역사조건이다. 15세기에도 양반 때문에는 전혀 새로운 문자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 우리 역사의 초기부터 지배층만이 한자를 배워 사용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고둥하교 국정교과서가 지적한 것과 같이 <수준 높은 문자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따라서 15세기에도 특별히 그들을 위해서는 다른 글을 만들 필요가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한글이 만들어진 뒤에도 창반들의 문자생활은 한문 중심으로 계속되었다.
15세기에 와서 한글이 만들어진 것은 이우성 교수가 지적한 것과 같이 이씨왕조의 훈민정책의 일환이었다. 훈민이란 말은 백성을 훈도(訓導), 훈육(訓育)한다는 뜻이다. 고려시대까지도 글을 가르쳐서까지 백성을 훈도하지 않아도 다스릴 수 있었는데, 이조초기에 와서는 글을 가르쳐서 다스리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되었거나 흑은 글을 가르치지 않고는 다스릴 수 얼다고 생각될 만큼 백성의 세계에 변화가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 변화가 바로 한글, 훈민정음을 만들지 않을 수 없게 한 것이다.
..... 피배층으로 하여금 글을 가르치지 않고는 다스릴 수 없게 만듦으로써 지금까지 문화생활권 밖에 팽개쳐져 있었던 자신들의 위치를 스스로 개선하여 문화생활권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이와 같은 힘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생각해보면 그것은 역시 백성세계의 자의식의 향상에서 찾지 않을 수 없다.
백성세계의 자의식이 급격히 높아진 계기는 멀리 고려중기의 무신란에까지 소급해서 찾아져야 할 것이라 생각된다. 12세기 후반기에 일어난 무신들의 정변은 고려사회의 귀족적 지배질서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렸고 그것을 계기로 하여 소위 천민의 난이라 부르는 일련의 정치적 ·사회적 변화가 나타났다. 천민난의 지도층이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고 외친 것과 같이 지금까지 거의 역사의 표면에 나타나지 못하였던 농민층과 천민층까지도 사회의식과 정치의식이 높아져 갔던 것이다.
........ 피난정권의 지배권력 내부에 분쟁이 일어나고 결국 몽고에 항복하였을 때 백성들에 있어서 그것은 지배층의 배신행위로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 한글의 창제도 새 왕조의 지배권력이 백성들에게 제시한 이익조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것은 결코 치자층의 자애심이 바탕이 된 것이 아니라, 백성세계가 스스로의 자의식을 높여감으로써 얻을 수 있었던 전리품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글 창제의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구하기 위하여 앞에서 제시하였던 두 가지 의문 가운데 한글이 정말 백성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인가 하는 두 번 째 의문에 대한 대답도 첫째 의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이미 함께 드러났다. 그러나 그것을 한층 더 분명히 하기 위하여 한글이 만들어진 후 그것이 이조 정부에 의하여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추적해보자. 한글이 본래 이조 정부의 지배목적의 일환으로 만들어졌음이 한층 더 분명해질 것이다.
 
한글이 만들어진 후 그것이 이조정부에 의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추적해보면 이조의 지배층이 그것을 만든 본래의 동기가 어디에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 이 자의식이 한 단계 높아진 백성을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즉 이씨왕조의 지배수단의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은 지배권력의 처지에서 보면 통치수단의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그것을 만들지 않을 수 없게 한 백성의 처지에서 보면 값높은 전리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배층의 창제동기와는 상관없이 그것은 처음부터 진정한 백성의 것이 될 수 있었다. 지배권력이 통치수단으로 만든 한글을 백성세계가 곧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만든 본래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그리고 한글창제의 진정한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글을 배운 백성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을 정치적 ·사회적 의사표시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스스로의 의식수준을 한층 더 높여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글이 반포된 지 3턴 후에 벌써 대신들을 비방하는 언문벽서가 나왔고,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연산군 시대에는 그의 폭정에 항거하는 언문(諺文)투서(投書). 언문괘서가 빈번하여 한글 사용 금지령이 내리고 한글책이 불태워졌다. 이때의 언문투서가 반드시 피지배층의 소행이란 증거를 찾기는 어렵지만, 그것에서 이미 한글이 가진 역사적 기능의 일단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권력의 횡포 때문에 한글이 일시 탄압을 받기도 하였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 양반 지배층의 권위가 떨어지고 백성세계의 자의식과 사회적 위치가 더욱 높아진 이조후기에 와서는 한글은 백성글로서의 제자리를 더욱 굳혀갔다. 괘서(掛書)나 문학작품 둥을 통하여 백성세계의 정치적 사회적 요구와 주장을 펼치는 수단이 됨으로써 중세 양반사회를 무너뜨리고 근대 민중사회를 이루어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의 구실을 다했던 것이다. 한문이 진서의 자리를 잃어가고, 한글이 언문의 위치를 탈피하면서 국문의 자리를 굳혀가는 과정은 바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이며 우리 역사간 근대화해 가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한글 창제의 역사적 의미를 어떤 측면에서 구하는가 하는 문제는 넓게는 우리 역사 전체를 어떤 눈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며 좁게는 15세기 즉 이씨왕조 성립시기의 우리 역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연관된다.(203-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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